장례식장에서 들은 한마디
"그래도 잘 사셨지."
지난가을, 동네 어르신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건넨 말이었습니다. 고인은 큰 사업을 하신 분도, 자식을 출세시킨 분도 아니었습니다. 평생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셨고, 자녀 셋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문객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참 잘 사신 분이야."
저는 국화꽃 앞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잘 산다는 건 대체 뭘까. 7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은 말인데, 그날따라 그 문장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기준들
젊은 시절, 잘 산다는 건 명확했습니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잘 시키고, 노후자금 넉넉히 모으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도 그 기준을 따랐습니다. 30년 넘게 한 직장을 다녔고,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고, 두 아이를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퇴직하던 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나름 할 건 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퇴직 후 1년이 지나도 "잘 살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천장을 보며 묻게 되었습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나.
철물점 사장님의 비밀
장례식이 끝난 뒤, 고인의 아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와 동갑이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후회 없다, 그 한마디였어요. 병원에서 의사가 힘드시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웃으시면서 '이만하면 됐지' 하셨대요."
그분은 매일 아침 6시에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4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냥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못과 나사를 팔았습니다.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동네 한 바퀴를 걸었고, 일요일엔 자식들과 밥을 먹었습니다.
화려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후회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던진 질문
그날 밤, 아내에게 장례식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한참을 듣더니 조용히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가 기준이에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잘 키운 것? 집 마련한 것? 건강하게 여기까지 온 것? 전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전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덧붙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매일 아침 커피 타주는 것, 그게 좋아요. 30년 넘게 한 번도 안 빠졌잖아."
사실 별 생각 없이 해온 일이었습니다. 그냥 습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그게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친구의 고백
며칠 뒤, 오랜 친구 영호를 만났습니다. 은퇴 후 둘이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갑니다.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중간쯤 약수터에서 막걸리 한 잔 하고 내려오는 게 우리 코스입니다.
영호는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견기업 임원까지 했고, 강남에 아파트 두 채를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 채를 팔고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했습니다.
"야, 나 요즘 행복해."
뜬금없이 그가 말했습니다.
"예전에 임원 달고 다닐 때는 몰랐어. 맨날 쫓기듯 살았거든.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서 텃밭에 물 주고, 낮에 손녀 학교 데려다주고, 저녁엔 마누라랑 드라마 봐. 그게 다야."
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이게 더 사는 것 같아."
숨겨진 기준들
그 뒤로 저는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잘 살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궁금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공원을 걷는 부부. 손녀 학원 셔틀을 10년째 해주는 할아버지. 동네 경로당에서 바둑 가르치는 퇴직 교사. 오래된 단골 식당 사장님과 30년째 농담을 주고받는 어르신.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누군가와 꾸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거창한 인맥이 아니라 매일 얼굴 보는 사람, 이름 부르며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째, 작은 일상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침 산책, 저녁 식사, 주말 통화. 반복되는 하루를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자신의 속도를 알았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느려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여기의 기준
요즘 저는 아침마다 아내에게 커피를 타면서 생각합니다. 이것도 기준이 될 수 있겠구나.
일주일에 두 번 손녀를 태권도장에 데려다주면서 생각합니다. 이 시간이 나중에 남겠구나.
영호와 산에 오르면서 생각합니다. 이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잘 살았다"는 말은 결국 과거형입니다. 삶의 끝에서 뒤돌아볼 때 붙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그 평가는 마지막 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 오늘, 이 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됩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인사하고, 밥을 같이 먹고, 안부를 묻는 것. 그게 쌓이면 "잘 살았다"가 됩니다.
철물점 사장님이 남긴 것
장례식 이후, 저는 가끔 그 철물점 앞을 지나갑니다. 지금은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간판도 그대로, 진열대도 그대로입니다.
얼마 전 못을 사러 들렀다가 아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늘 그러셨어요. 가게 문 여는 게 제일 좋다고. 손님 오면 반갑고, 안 와도 괜찮고. 그냥 여기 있는 게 좋다고."
그게 그분의 기준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기준. 40년 동안 매일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 산" 인생이었습니다.
저도 이제 제 기준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알게 되었습니다.
잘 사는 건 도착하는 게 아니라 매일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