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낯설었던 60대, 어느 날 달라진 하루
퇴직하고 세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급하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시계는 잘 가지 않았고, TV는 점점 지겨워졌습니다. 책을 펴다가도 몇 장 못 읽고 덮어버리기 일쑤였죠.
그날 오후, 오랜 친구 영수 형을 만났습니다. 커피를 마시다가 형이 제 스마트폰을 힐끗 보더니 말했습니다.
"너 휴대폰에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만 쓰지? 전화, 문자, 카톡 정도?" "응. 뭐 더 있어?" "야, 요즘 60대들은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산다. 앱만 잘 쓰면 생활비, 건강, 취미 다 관리하더라."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아이콘은 많은데, 정작 내가 쓰는 건 서너 개뿐이었습니다. ‘나도 이걸 좀 더 잘 쓰면, 하루가 덜 무료해지지 않을까?’ 그날부터 저는 직접 앱을 깔아보고, 지우고, 다시 써보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앱” 말고, 진짜 60대에게 편한 앱을 찾았다
인터넷에 “시니어 추천 앱”을 검색해보면 수십 개의 글이 나옵니다. 하지만 막상 깔아서 써보면, 광고가 너무 많거나, 글씨가 작거나, 메뉴가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에겐 좋을지 몰라도, 60대인 제 눈과 손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아예 다시 세웠습니다. 좋다는 말만 믿지 않고, “제가 실제로 3개월 동안 써보고 남은 것만 고른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제가 정한 세 가지 기준
- 1. 글씨와 버튼이 커야 한다
돋보기를 꺼내야 보이는 앱은 바로 삭제했습니다. 한 번 누르면 바로 실행되는 큰 버튼이 있는 앱이 편했습니다. - 2. 광고를 잘못 눌러도 다시 돌아오기 쉬워야 한다
화면 가득 광고가 뜨고, 닫기 버튼이 구석에 숨어 있는 앱은 스트레스였습니다. 광고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한 번에 닫을 수 있는 앱만 남겼습니다. - 3. “매일 쓸 일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
한 달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앱은 다 정리했습니다. 날씨, 길찾기, 건강, 소통, 취미처럼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쓸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정리하고 보니, 결국 제 휴대폰에 남은 앱은 딱 다섯 가지였습니다. 이제 그 다섯 가지를 하나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1. 길과 동네를 다시 보게 해준 앱 – 카카오맵
퇴직 전에는 내비게이션을 차에서만 켰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걷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카카오맵을 아침마다 켭니다.
산책 나가기 전에 “내 주변” 버튼을 누르면, 근처 공원, 카페, 병원, 약국이 한눈에 보입니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골목이, 이제는 “새로운 산책 코스 후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를 탈 때도 도움이 됩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몇 번 버스가 오는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막연히 기다렸다면, 지금은 “3분 뒤 도착”이라는 글자를 보고 느긋하게 나갑니다.
이런 분께 특히 좋습니다
- “운전은 줄이고, 걷기와 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60대”
- 동네 병원·약국·복지관 위치를 한 번에 보고 싶은 분
2. 집 안 정리 + 소소한 수입 – 당근마켓
집안을 한 번 둘러보면, 안 쓰는 물건이 참 많습니다. 한때는 애지중지했던 믹서기, 안 맞는 골프채, 읽지 않는 책들….
저는 당근마켓에 오래된 토스터기를 5천 원에 올려봤습니다. 솔직히 ‘이걸 누가 사갈까’ 싶었는데, 그날 저녁에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버님, 토스터기 지금도 있나요? 차로 10분 거리인데 지금 가도 될까요?"
토스터기를 들고 나가니, 젊은 부부가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희 새로 결혼해서요. 새 제품은 부담돼서… 잘 쓰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5천 원 벌었어. 그리고 우리 집 짐도 조금 줄었어."
당근마켓을 쓰면서 좋았던 점
- 집 안 물건이 하나씩 비워지면서 머리도 같이 정리되는 느낌
-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다시 쓰이는 기쁨
- 생각보다 친절한 이웃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음
3. 해외여행·외국어 스트레스 줄여준 – 파파고
저는 외국어에 약한 편입니다. 특히 메뉴판을 볼 때면 항상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파파고의 ‘사진 번역’ 기능을 쓰고 나서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식당 메뉴판을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몇 초 뒤, 화면에 한글 번역이 떴습니다. “돼지고기 정식”, “소고기 덮밥”, “오늘의 생선구이”. 단어 하나하나를 묻지 않아도, 대충 어떤 메뉴인지 감이 잡혔습니다.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외국 사이트를 볼 때, 자녀나 손주가 보내 준 영어 문장을 이해할 때 살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앱이었습니다.
4. 건강 기록을 한곳에 – 건강보험공단 앱(또는 건강관리 앱)
60대 이후에는 병원과 검진이 생활의 일부가 됩니다. 저는 예전에는 종이로 된 건강검진 결과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앱을 깔고 나서는, 검진 결과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기록과 최근 기록을 나란히 볼 수 있어서, 수치가 조금씩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혈압과 혈당을 자주 재는 분이라면, 따로 건강 기록 앱을 써도 좋습니다. 집에서 잰 수치를 스마트폰에 기록해 두었다가,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보여주면 “집에서는 이 정도로 나오시는군요”라며 더 정확한 상담을 해주십니다.
5. 심심함을 덜어 주는 선생님 – 유튜브
유튜브는 잘못 쓰면 시간만 날릴 수 있지만, 잘 쓰면 평생 무료 선생님입니다. 저는 처음엔 가요 영상만 보다가, 어느 날부터는 “60대 어깨 스트레칭”, “무릎 아픈 사람 걷기 방법” 같은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스트레칭 10분, 저녁에 요리 영상 하나. 그걸 따라 하다 보니, 하루를 보내는 패턴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또 브라보 시니어 같은 시니어 대상 채널을 구독해두면, 내 또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받고,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단, 유튜브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시간이 금방 가기 때문에, “하루에 몇 개까지만 본다”는 나름의 규칙을 정해두는 게 좋았습니다.
앱 다섯 개, 이렇게 다르게 쓰입니다
한눈에 보이도록, 제가 실제로 느낀 용도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앱 이름 | 주요 역할 | 하루에 주로 쓰는 시간대 |
|---|---|---|
| 카카오맵 | 산책 코스·버스·동네 시설 확인 | 아침 산책 전, 외출 전 |
| 당근마켓 | 집 정리 + 소소한 부수입 | 오전 집안 정리 후, 저녁 시간 |
| 파파고 | 여행·외국어 간단 번역 | 여행 준비할 때, 해외에서 외식할 때 |
| 건강 관련 앱 | 검진·진료 기록, 혈압·혈당 관리 | 아침·저녁 혈압 잴 때, 병원 다녀온 날 |
| 유튜브 | 운동·요리·취미 강좌 | 아침 스트레칭, 저녁 휴식 시간 |
앱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이 다섯 가지는 “길, 물건, 말, 몸, 마음”을 관리하는 도구라고 느꼈습니다. 복잡한 기능을 다 알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한테 꼭 필요한 쓰임새 한 가지만 알아도, 스마트폰은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앱이 좋냐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부터 하나씩 해볼까”였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순서를 정하겠습니다.
- ① 카카오맵으로 내 동네 산책 코스를 한 번 만들어 본다.
- ② 당근마켓에 집 안 물건 한 개만 올려본다. 팔리든 안 팔리든, 그 경험을 해본다.
- ③ 유튜브에서 “60대 스트레칭”을 검색하고, 가장 쉬워 보이는 영상 하나만 따라 해본다.
- ④ 건강검진 결과를 다시 보고 싶다면, 건강 관련 앱을 설치해 본다.
- ⑤ 나중에 해외여행 계획이 생기면, 그때 파파고를 깔아도 늦지 않다.
한 번에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산책만, 내일은 중고거래만, 모레는 유튜브 운동만. 하루에 하나씩만 늘려가도, 석 달 후엔 스마트폰이 꽤 든든한 도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마무리 – 스마트폰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가끔 스마트폰을 “중독의 주범”이라고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써보니, 결국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저에게 스마트폰은 이제, 아침에는 길을 알려 주고, 낮에는 집을 정리하게 하고, 저녁에는 운동을 시키고, 가끔은 외국어도 대신 읽어주는 도구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오늘은 딱 하나만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휴대폰 속 앱을 한 줄 내려 보시고, “이 중에 진짜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건 뭐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 그 작은 질문이, 스마트폰과 노후의 관계를 조금 바꿔 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