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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에 시작한 SNS, 500명 팔로워가 알려준 인생 리셋의 의미

by Bravo Senior 202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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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버튼을 누른 순간

2024년 4월 18일 오전 9시 23분.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회원가입 완료" 버튼. 손가락이 멈췄다. 65세에 처음 만드는 SNS 계정. 아이디는 'flower_chaser'로 정했다. 꽃을 쫓는 사람. 웃기지 않나? 평생 숫자만 쫓던 내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근거림? 떨림? 아니, 설렘이었다. 마치 첫 출근날 아침처럼.

리셋이란 이런 것이다.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확신.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꽃 사진을 한 장씩 올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꽃 사진을 찍는 시니어의 손

첫 번째 리셋: 아침 7시의 발견

퇴직 후 3개월간, 나는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아내는 이미 출근했고, 집은 조용했다. TV를 켜도 재미없고, 책을 펴도 집중이 안 됐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다 창밖을 봤다. 동이 트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아, 아침이 이렇게 예뻤나." 40년간 출근길에 본 하늘은 그저 회색이었다. 바쁘게 지나쳤을 뿐.

다음 날, 알람을 6시 30분에 맞췄다. 일어나서 동네를 걸었다. 빵집 앞에서 나는 냄새, 신문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 학교 가는 아이들. 세상은 이미 깨어 있었다. 나만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아침이 좋아졌다. 이게 첫 번째 리셋이었다.

두 번째 리셋: 무료하다는 말의 끝

아내가 물었다. "요즘 뭐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집에 있지."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실망이 섞여 있었다. 나도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시니어 사진 강좌' 광고를 봤다. 주 1회, 4주 과정. 수강료 5만 원. 별것 아닌 금액이었지만, 신청 버튼을 누르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었다.

첫 수업 날, 강의실에 들어갔다. 20명쯤 됐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계셨다. 강사는 젊은 여자였다.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찍는 법을 배워볼게요." 나는 노트를 꺼냈다. 40년 만에 다시 든 펜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옆자리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저도 처음인데 재미있네요." 우리는 카톡을 교환했다. 퇴직 후 처음 만든 새 친구였다.

시니어 사진 강좌 수업 현장

세 번째 리셋: 100명의 팔로워

사진 강좌가 끝난 후, 배운 대로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동네 공원, 아파트 화단, 길가의 작은 꽃들. 처음엔 그냥 취미였다. 하지만 찍다 보니 재미있었다. 같은 꽃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비 온 뒤와 햇살 아래가 달랐다.

SNS에 올리기 시작한 건 한 달 후였다. 첫 게시물에 '좋아요'가 3개 달렸다. 아내, 딸, 그리고 모르는 사람 한 명. 그 한 명이 신기했다. 댓글이 달렸다. "꽃이 정말 예쁘네요. 어디서 찍으셨어요?"

나는 답글을 썼다. "집 앞 공원입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팔로우를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3장씩 올렸다. 한 달 후 팔로워가 50명이 됐다. 3개월 후 100명을 넘었다.

어느 날, 한 여고생이 메시지를 보냈다. "할아버지, 저 요즘 힘든데 꽃 사진 보면 위로돼요. 감사해요." 나는 울컥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다니.

네 번째 리셋: 책상 앞에 다시 앉다

SNS를 하면서 생긴 변화가 있다. 글을 쓰게 됐다. 사진만 올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설명을 길게 쓰기 시작했다. "오늘 본 목련은 작년과 달랐다. 꽃잎이 더 두꺼웠다. 겨울이 추웠던 탓일까."

글을 쓰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제목은 "65세, 꽃을 쫓는 남자". 일주일에 한 번, 긴 글을 올렸다. 꽃 이야기, 산책 이야기, 가끔은 퇴직 후 느낀 감정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공감됩니다." "저도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어요." "용기가 나네요." 낯선 사람들의 응원이 이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

지금은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가장 좋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창밖의 새 소리. 이 순간만큼은 내가 다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트북 앞에서 블로그 글을 쓰는 시니어

다섯 번째 리셋: 화면 밖의 사람들

팔로워 300명을 넘긴 어느 날, DM이 하나 왔다. "혹시 오프라인 모임 열 생각 없으세요?" 보낸 사람은 'garden_lover'라는 아이디의 여성분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렸다.

처음엔 망설였다. SNS는 괜찮았다. 화면 너머였으니까. 하지만 직접 만난다? 어색하지 않을까?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일주일을 고민했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좋습니다. 한번 만나보죠."

약속 장소는 서울숲이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나는 30분 일찍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9시 55분, 한 여성분이 다가왔다. "flower_chaser님이세요?" 우리는 악수했다.

그날 모인 사람은 총 7명이었다. 60대 초반부터 70대 중반까지. 모두 SNS로만 알던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꽃 사진 이야기를 시작하니 말문이 트였다. "저 개나리는 이렇게 찍었어요." "저기 벚꽃 터널 가보셨어요?"

점심을 함께 먹었다. 커피를 마셨다. 한 분이 말했다. "SNS 덕분에 다시 살아난 것 같아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서울숲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그날 밤, 그 사진을 올렸다. 댓글이 50개 넘게 달렸다. "저도 가고 싶었어요." "다음엔 저도 불러주세요."

리셋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하는 것이었다.

여섯 번째 리셋: 실패도 리셋이다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사진 찍기가 귀찮아진 날도 있었고, 블로그 글이 도무지 안 써지는 날도 있었다.

특히 유튜브를 시작했다가 실패했다. "요즘 다들 유튜브 하잖아"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3주 동안 했다. 영상을 10개 올렸다. 조회수는 최고 47회였다. 댓글은 딸이 단 것 하나.

2개월 만에 그만뒀다. 솔직히 좌절했다. "역시 나는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SNS도 안 열어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일주일 후, 나는 다시 공원에 나갔다. 꽃 사진을 찍었다. 유튜브는 내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진과 글쓰기가 내 방식이었다. 모든 리셋이 성공할 필요는 없었다. 시도 자체가 리셋이었다.

일곱 번째 리셋: 아내의 한마디

며칠 전,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표정이 달라졌어." 나는 물었다. "어떻게?" 아내가 웃었다. "살아있는 표정."

그 말을 듣고 거울을 봤다. 확실히 달랐다. 눈빛이 달랐다. 퇴직 직후의 나는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눈이었다.

아내도 변했다. 요즘 내 블로그를 읽는다고 했다.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줄 몰랐어." 우리는 40년을 함께 살았지만,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리셋 후의 나는 아내에게도 새로운 사람이었다.

지난주, 아내가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나도 계정 만들었어. 가르쳐줘." 아내의 아이디는 'cooking_diary'였다. 요리 사진을 올린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해봐. 생각보다 재미있어."

어제 아내의 첫 게시물을 봤다. 된장찌개 사진이었다. 좋아요가 벌써 15개. 나도 좋아요를 눌렀다. 댓글을 달았다. "맛있어 보여요." 아내가 답글을 달았다. "고마워요, flower_chaser님."

우리는 40년 만에 다시 서로를 발견하고 있었다.

서울숲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시니어 모임

리셋은 계속된다

요즘 나는 생각한다. 리셋이란 무엇일까.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진짜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40년간 나는 회사원이었다. 부장, 이사, 임원. 하지만 그건 직함일 뿐이었다. 진짜 나는 아니었다. 지금 나는 꽃을 찍고, 글을 쓰고, 아침을 산책한다. 이게 진짜 나다.

어제 팔로워가 500명을 넘었다. 누군가는 "고작 500명?"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500개의 작은 기적이다. 500명의 낯선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내 글을 읽는다. 퇴직 후 처음으로, 나는 다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됐다.

리셋 버튼은 한 번만 누르는 게 아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낼 때마다. 우리는 계속 리셋한다.

당신의 리셋 버튼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 찾지 못했다면 괜찮다. 나도 65세에 찾았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활짝 핀 목련 꽃과 그 앞에 선 시니어

― flower_chaser의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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