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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인생 2막’ 설계법 — 일보다 삶에 집중하는 기술

by Bravo Senior 202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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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인생 2막' 설계법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퇴직 이틀 전 밤, 나는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멈췄다. 30년간 모아온 명함 더미. 그 안에 내 이름은 있었지만, 정작 '나'는 없었다. 부장, 팀장, 이사… 직함은 바뀌었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명함들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로 남을까?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끝"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마지막 출근길, 지하철 창밖을 보며 깨달았다. 끝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말이다.

퇴직을 앞둔 빈 책상과 명함

시간이라는 선물, 그리고 그 무게

퇴직 후 첫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습관처럼 7시에 눈을 떴지만, 갈 곳이 없었다. 자유라는 건 이렇게 낯선 것이었다. 아내는 출근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시계만 바라봤다. 8시, 9시, 10시… 시간은 흘렀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동네 공원을 걸었다. 평일 낮의 공원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이 지나갔다.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나만 시간 밖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 "자유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그날 밤, 나는 노트를 펼쳤다. "나는 이 시간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답은 없었다. 하지만 질문은 분명했다.

일 없는 나, 그래도 나인가

직장 동료들과의 단톡방은 점점 조용해졌다. 처음엔 "형님 요즘 뭐 하세요?" 같은 메시지가 왔지만, 한 달이 지나자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에 나는 더 이상 없었다.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물었다. "요즘 뭐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집에 있어"라고 말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그는 아직 일하고 있었다. "바빠 죽겠어"라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생기가 있었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거울을 봤다.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빛이 달랐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눈. 아니, 무언가를 찾지 못한 사람의 눈이었다.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책을 건네주는 시니어

새로운 이름표를 찾아서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나는 부인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느꼈다.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봉사 모집 공고를 봤다. "책 정리 도우미."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신청서를 쓰는 순간, 손이 떨렸다. 30년 만에 처음 쓰는 이력서. 직함도, 경력도 필요 없었다. 그냥 "책을 좋아합니다"라고 썼다.

첫 봉사 날, 책장 앞에 섰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났다. 사서 선생님이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급할 것 없어요." 천천히. 그 말이 좋았다. 30년간 나는 늘 빨리, 더 빨리 움직였다. 이제는 천천히 해도 괜찮았다.

책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 책들도 한때는 서점 신간 코너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 구석 서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더 이상 신간이 아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석 달 후, 작은 변화들

도서관 봉사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다가왔다. "할아버지, 공룡 책 어디 있어요?"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동 코너로 갔다. 책장 앞에서 아이는 눈을 반짝였다. "우와, 티라노사우루스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 30년 동안, 누군가 내게 "우와"라고 한 적이 있었나? 실적 보고에, 기획서에, 회의록에… '우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작은 도서관에서 한 아이의 "우와"가 내 가슴을 두드렸다.

다음 주, 그 아이는 다시 왔다. 이번엔 엄마와 함께. "엄마, 저번에 그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아이 엄마가 내게 인사했다. "덕분에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됐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목이 메었다.

퇴직 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계절이 바뀌고, 나도 바뀌고

가을이 왔다. 도서관 앞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퇴직한 지 반년. 이제 월요일 아침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오늘은 어떤 책을 정리할까.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날까.

지난주, 도서관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우리 동네 이야기"라는 주제로, 지역 어르신들이 쓴 글과 사진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나도 참여했다. 제목은 "퇴직 후 6개월, 한 남자의 기록".

전시 오픈 날, 한 청년이 내 글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저도 요즘 이직을 고민 중이에요. 뭔가… 용기가 생기네요." 나는 놀랐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줄은 몰랐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했다. "나, 요즘 행복한 것 같아." 아내가 웃었다. "이제야 사람 얼굴 되었네." 거울을 봤다. 아내 말이 맞았다. 눈빛이 달랐다. 무언가를 찾은 사람의 눈.

가을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시니어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동네 카페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물었다. "퇴직하고 뭐 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도서관에서 책 정리 봉사하고, 가끔 글도 쓰고요." 그분이 웃었다. "그것도 일이네요." 일?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인생 2막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직업? 새로운 취미? 아니면 새로운 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그건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가깝다는 것.

어떤 사람은 카페를 열고,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고, 어떤 사람은 그저 손주를 돌본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채우느냐가 아닐까.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

요즘 나는 매일 아침 노트를 펼친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느낄까"를 쓴다. 별것 아닌 문장들이다. "공원 벤치가 따뜻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가 인사했다." "아내가 만든 된장찌개가 맛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퇴직은 내려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건 다른 길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더 높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오래.

당신의 인생 2막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책의 마지막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펜을 쥐고 있으니까.

― 어느 퇴직자의 노트에서

※ 이 글은 실제 퇴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 인생 2막에 정답은 없습니다. 당신만의 답을 찾아가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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