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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었다 - 70세, 커뮤니티에서 찾은 새로운 친구들

by Bravo Senior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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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었다 - 70세, 커뮤니티에서 찾은 새로운 친구들

2023년 3월, 퇴직 후 8개월째

김영수 씨(70세)는 아침 7시에 눈을 뜹니다.

알람도 없이. 40년간 회사 다니며 몸에 밴 습관입니다. 하지만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봅니다. 아내는 이미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어났어요? 밥 먹어요."

밥을 먹습니다. TV를 봅니다. 신문을 읽습니다. 점심을 먹습니다. 낮잠을 잡니다. 일어나면 오후 3시. 또 TV를 봅니다. 저녁을 먹습니다. 9시에 잡니다.

매일 똑같습니다.

"이게 은퇴 생활인가?"

그는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24년 10월, 서울 마포구의 한 시니어 커뮤니티 센터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고,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1년 반 전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병

"처음엔 외로운 줄도 몰랐어요."

김영수 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그냥 심심하다고만 생각했죠. 회사 다닐 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자 있고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까...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의 하루는 단조로웠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고, 자녀들은 각자 생활이 바빴습니다. 친구들에게 전화해봤지만 다들 바빴습니다. 회사 동료들은 퇴직 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게 뭔지 아세요? 하루 종일 말을 안 할 때가 있어요. 아내한테 '밥 먹자' 이 한마디 빼고는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통계청 조사(2023)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7.8%가 외로움을 느낍니다. 특히 남성 독거노인의 경우 이 비율이 50%를 넘습니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건강을 해칩니다. 하루 담배 15개비와 같은 해로움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김영수 씨도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잠을 못 자기 시작했어요. 새벽 3시에 깨서 아침까지 뒤척이고. 식욕도 없고. 아내가 병원 가보라고 했죠.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는 70대 시니어 남성

작은 포스터 하나

2023년 9월 어느 날, 김영수 씨는 동네 주민센터에 들렀습니다. 무심코 게시판을 보다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니어 커뮤니티 '함께' 회원 모집"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장소는 걸어서 10분 거리.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가끔 나들이도 가고, 취미 활동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안 갈 생각이었어요. 솔직히 창피했거든요. '내가 이런 데를 가야 하나' 하는. 근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한 번만 가봐' 해서..."

첫 수요일. 그는 센터 앞에서 10분을 서성였습니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돌아가려는 순간 안에서 누가 나왔습니다.

"어르신, 처음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색했던 첫날

모임에는 15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60대부터 80대까지. 남자 5명, 여자 10명. 모두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영수 씨는 구석자리에 앉았습니다.

"제 이름은 김영수입니다. 올해 70세고요. 작년에 퇴직했습니다."

그의 자기소개는 짧았습니다. 떨렸습니다. 이런 자리가 40년 만이었으니까요.

"환영합니다! 저는 박순희예요. 여기 10년 다녔어요."

"저는 이철수. 5년 됐죠. 처음엔 저도 어색했는데 금방 적응돼요."

사람들이 하나씩 인사했습니다. 차를 권했습니다. 과자를 나눴습니다. 그는 조금씩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날 주제는 "요즘 뭐 하며 지내세요?"였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일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손주 돌보는 이야기, 텃밭 가꾸는 이야기, 새로 시작한 운동 이야기.

김영수 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뭔가 위로가 됐습니다.

"집에 돌아오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도 갔죠."

시니어 커뮤니티 첫 모임에서 차 마시며 대화하는 70대 은퇴자

3개월 후, 수요일이 기다려지다

2023년 12월, 김영수 씨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50분이면 집을 나섭니다. 10분 거리지만 일찍 가서 사람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구석자리가 아니라 한가운데 앉습니다.

"이철수 형이랑 친해졌어요. 나이도 비슷하고, 전에 다니던 회사도 같은 업종이었거든요. 모임 끝나고 둘이 커피 마시러 가기도 하고."

모임은 그냥 수다만 떠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나들이를 갔습니다. 가까운 산, 공원, 박물관. 김영수 씨는 처음엔 안 갔습니다. 부담스러워서.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같이 산에 갔는데, 다들 너무 즐거워하는 거예요. 사진도 찍고, 김밥도 나눠 먹고. 저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요. '아, 이게 사람 사이구나' 싶었어요."

그의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확인합니다. 수요일이면 기분이 좋습니다. 목요일이면 "다음 주 수요일에 뭐 할까?" 궁금합니다.

잠도 잘 옵니다. 식욕도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요즘 표정이 밝아졌다'고. 저도 느껴요. 뭔가 사는 게 재미있어졌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2024년 3월, 김영수 씨는 모임에서 생일을 맞았습니다.

그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철수 씨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형, 생일 축하해요!"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김영수 씨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40년 회사 생활 동안 동료들이 제 생일을 챙겨준 적 없었어요. 퇴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제 생일을 기억해줬죠.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날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찾던 게 단순히 '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외로움의 반대는 '함께'라는 걸.

하버드대학교 75년 연구(2023)는 인간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좋은 관계'라고 밝혔습니다.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게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김영수 씨는 이제 모임의 핵심 멤버입니다. 신입 회원이 오면 제일 먼저 다가가서 말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어색했어요. 근데 금방 편해져요. 걱정 마세요."

1년 반 전 자기가 들었던 말을 이제 그가 다른 사람에게 건넵니다.

시니어 커뮤니티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축하받으며 행복해하는 70대

지금, 그의 하루

2024년 10월. 우리가 인터뷰를 마치던 날, 김영수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퇴직하고 처음엔 인생이 끝난 줄 알았어요.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여기서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같이 웃으면서 알았어요.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구나."

그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모임에 갑니다. 수요일 정기 모임, 토요일 등산 모임. 그 외에도 친해진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만납니다.

휴대폰에는 매일 카카오톡 메시지가 옵니다.

"형, 오늘 날씨 좋은데 산책 갈까요?"

"영수 씨, 이번 주 모임 주제가 '여행'이래요. 준비해오세요!"

"생신 때 찍은 사진 보내드려요. 액자 만들어 놓으세요 ^^"

작은 메시지들. 하지만 이게 그의 하루를 채웁니다.

"제일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아침에 눈 뜨면 오늘 누굴 만날까, 뭘 할까 기대된다는 거예요. 예전엔 그냥 하루가 지나가기만 기다렸거든요. 지금은 하루가 빨라요.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당신도 혼자가 아닙니다

김영수 씨의 이야기를 끝으로, 저는 센터를 나왔습니다.

뒤돌아보니 그는 다른 회원들과 다음 주 나들이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웃고 있었습니다. 1년 반 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외롭습니까?

퇴직 후 갈 곳이 없어 답답합니까?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때가 있습니까? 아침에 눈 떠도 기대되는 게 없습니까?

그렇다면 김영수 씨처럼 작은 용기를 내보세요.

동네 주민센터 게시판을 보세요. 시니어 커뮤니티를 검색해보세요. 복지관 프로그램을 알아보세요. 처음엔 어색할 겁니다. 창피할 수도 있습니다. 김영수 씨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만 가보세요.

그곳에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로웠던 사람들. 이제 함께 웃는 사람들.

당신도 혼자가 아닙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2024년 10월 필자가 서울 마포구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만난 김영수 씨(가명, 70세)의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실명과 구체적 장소는 가명 처리했으며, 주요 내용은 실제 경험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 통계청, "고령자 사회 참여 및 외로움 실태조사" (2023)
  •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 75년 프로젝트" (2023)
  • 보건복지부, "노인 정신건강 실태조사" (2023)

최종 작성: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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