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카톡 알림
강민수 씨(68세)의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였습니다.
"강민수 님을 '○○고 76학번' 단체방에 초대했습니다."
강민수 씨는 화면을 봤습니다. 단체방 이름을 다시 읽었습니다. '○○고 76학번'.
'고등학교? 76학번? 그게 나네.'
메시지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김철수입니다. 기억나세요?"
"철수! 나 박영호야. 오랜만이다!"
"어머, 영호야? 진짜 너야?"
강민수 씨는 놀랐습니다. 김철수. 박영호. 그 이름들이 기억났습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이었습니다.
50년 전 이야기입니다.
1976년. 강민수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김철수, 박영호, 이정호, 최수진. 같은 반 친구들이었습니다.
졸업 후 각자 흩어졌습니다. 대학 가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강민수 씨는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단체방에 15명이 있었습니다. 다 같은 반 친구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다 살아 있구나.'
"다음 달에 만날까요?"
단체방에서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습니다.
"우리 오랜만에 만나면 어때?"
"좋지! 동창회 하자!"
"50년 만에 보는 거네?"
"맞아. 졸업 후 처음이야."
강민수 씨는 망설였습니다. '내가 가도 될까? 너무 오래됐는데. 나를 기억이나 할까?'
하지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50년 만에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다들 어떻게 살았을까?'
메시지를 입력했습니다.
"저 강민수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저도 갈게요."
"민수야! 살아 있었구나!"
"민수 기억나! 반장했던 민수 맞지?"
"맞아요. 반장 했었어요."
"와, 반가워. 꼭 와!"
강민수 씨는 미소 지었습니다. '나를 기억하네.'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는 학교 근처 식당.
2024년 3월 16일, 동창회 당일
강민수 씨는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긴장됐습니다. '50년 만에 만나는데 어떡하지?'
옷을 골랐습니다. 깔끔한 셔츠를 입었습니다. 거울을 봤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했습니다. 주름이 생겼습니다.
'나도 늙었구나. 친구들도 다 늙었겠지.'
오후 1시 40분.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일찍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방에 이미 5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다들 60대 후반으로 보였습니다.
"민수야?" 한 남자가 일어섰습니다.
"철수야?" 강민수 씨가 물었습니다.
"맞아! 와, 민수야. 50년 만이다!"
둘이 악수했습니다. 김철수 씨는 살이 쪘습니다. 머리가 벗겨졌습니다. 하지만 웃는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영호야, 정호야, 수진아!" 강민수 씨가 다른 사람들을 봤습니다.
"민수야! 반가워!"
다들 일어나서 악수했습니다. 포옹했습니다. 50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15명이 다 모였습니다.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너 기억나?"
식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얘기하느라 바빴습니다.
"민수야, 너 어떻게 살았어?" 김철수 씨가 물었습니다.
"나? 회사 다녔어. 은행원. 3년 전에 퇴직했어. 너는?"
"나는 중학교 교사했어. 작년에 퇴직. 지금은 집에서 놀아."
"영호 너는?"
"나는 사업했어. 작은 공장 운영했지. 지금은 아들한테 넘겨줬어."
한 명씩 근황을 얘기했습니다. 다들 각자 살아왔습니다. 은행원, 교사, 사업가, 공무원, 간호사.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았습니다. 다들 퇴직했다는 것. 자녀들은 독립했다는 것. 이제 여유가 생겼다는 것.
"근데 우리 졸업 앨범 봤어?" 최수진 씨가 물었습니다.
"어디 있어?"
"내가 가져왔어."
최수진 씨가 가방에서 앨범을 꺼냈습니다. 낡은 졸업 앨범이었습니다. 1976년 2월.
앨범을 펼쳤습니다. 단체 사진이 나왔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 18살. 젊었습니다.
"와, 이거 봐. 우리 진짜 어렸네."
"민수야, 너 여기 있다. 반장이라고 앞줄에 앉았네."
"철수는 여기. 뒷줄 맨 오른쪽."
다들 웃었습니다. 옛날 사진 속 자기를 보며 웃었습니다.
"50년이 지났구나." 강민수 씨가 말했습니다.
"맞아. 우리 이제 70 다 됐어."
"시간 참 빠르다."
추억 나누기
음식을 먹으며 추억 얘기를 했습니다.
"너희 기억나? 수학여행 갔을 때 영호가 길 잃어버린 거?"
"아, 맞아! 경주 갔을 때. 영호가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2시간 만에 돌아왔잖아."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선생님한테 혼났잖아."
다들 웃었습니다.
"민수 너 기억나? 반장 선거 때 연설 엄청 잘했잖아."
"그랬나?"
"응. '우리 반을 최고로 만들겠습니다!' 했잖아. 멋있었어."
"철수 너는 농구 잘했지. 학교 대표 선수였잖아."
"옛날 얘기야. 지금은 무릎이 안 좋아서 못 뛰어."
추억이 쏟아졌습니다. 체육대회, 축제, 시험, 급식, 체벌. 50년 전 일들이 생생했습니다.
"우리 졸업하고 왜 연락 안 했을까?" 강민수 씨가 물었습니다.
"바빴지 뭐.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까 50년이 지났어."
"맞아. 살다 보니까 친구들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까 좋네."
"진짜 좋아. 50년 만인데도 어색하지 않아."
Q.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하지 않나요?
A. 처음 10분은 어색합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추억 얘기를 시작하면 금방 풀립니다. "너 기억나?" "그때 그랬지?"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18살로 돌아간 것처럼 편해집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대화가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우리를 연결해줍니다.
단체 사진
식사가 끝났습니다. 오후 5시였습니다. 3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진 찍자!" 최수진 씨가 제안했습니다.
"좋아!"
15명이 일어났습니다. 벽을 배경으로 줄을 섰습니다. 키 작은 사람은 앞줄, 키 큰 사람은 뒷줄.
"웃으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이 찍혔습니다.
"한 장 더!"
찰칵. 또 찍었습니다.
김철수 씨가 사진을 단체방에 올렸습니다. "2024년 3월 16일. ○○고 76학번 동창회. 50년 만의 재회."
강민수 씨는 사진을 봤습니다. 15명의 60대 후반 사람들. 머리는 희끗희끗. 주름은 깊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습니다. 웃고 있었습니다.
'우리 많이 늙었네. 근데 행복해 보여.'
"다음 달에 또 만나자"
헤어질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언제 만날까?" 박영호 씨가 물었습니다.
"다음 달?"
"좋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자."
"어디서?"
"여기 좋았어. 여기로 하자."
"토요일 오후 2시?"
"그래.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약속이 정해졌습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정기 모임이었습니다.
"잘 가. 다음 달에 봐!"
"그래, 조심히 가!"
강민수 씨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창밖을 봤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정말 좋았어. 5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같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
6개월 후, 2024년 9월
강민수 씨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동창회에 갔습니다.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6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번 같은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같은 시간에. 15명이 거의 다 참석했습니다.
처음엔 추억 얘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일들. 50년 전 일들.
점점 현재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뭐 하는지, 건강은 어떤지, 자녀들은 잘 사는지.
어느 날 김철수 씨가 말했습니다.
"요즘 우울해서 병원 다녀."
"왜? 무슨 일 있어?"
"퇴직하고 할 일이 없으니까 우울하더라.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하고."
"나도 그랬어." 박영호 씨가 말했습니다. "퇴직 후 1년은 정말 힘들었어. 근데 요즘은 좀 나아."
"뭐 했는데?"
"복지관에서 봉사활동 시작했어. 일주일에 두 번. 거기서 사람들도 만나고."
"나도 해볼까?"
"해봐. 나랑 같이 가자."
이렇게 서로 도왔습니다. 고민을 나눴습니다.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강민수 씨도 얘기했습니다.
"나 요즘 무릎이 아파서 걷기 힘들어."
"병원 가봤어?"
"응. 의사가 수술하래."
"수술 무서우면 재활 치료 해봐. 내가 작년에 했는데 많이 나아졌어." 이정호 씨가 조언했습니다.
"어디서 했어?"
"○○병원. 좋더라. 내가 연락처 줄게."
서로가 서로를 챙겼습니다. 동창이 아니라 가족 같았습니다.
Q. 동창회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
A. 가장 쉬운 방법은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드는 겁니다. 기억나는 친구 한두 명에게 먼저 연락하세요. "우리 동창회 단체방 만들까?"라고 제안하면 됩니다.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초대하고, 연쇄적으로 늘어납니다. 또는 학교 동창회 홈페이지나 동문회에 연락해서 명단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5~10명 정도 작게 시작하세요.
1년 후, 2025년 3월
동창회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2025년 3월 16일. 정확히 1년 전 첫 동창회를 한 날이었습니다.
15명이 모였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우리 만난 지 1년 됐네." 김철수 씨가 말했습니다.
"벌써 1년이야?"
"응. 12번 만났어. 한 번도 안 빠지고."
"대단하다. 우리."
케이크를 준비했습니다. 1주년 기념 케이크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동창회 1주년!"
다 같이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웃고 떠들었습니다.
강민수 씨가 말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생각나. 카톡 단체방에 초대받았을 때. 처음엔 망설였어. '나를 기억이나 할까?' 했거든."
"나도 그랬어." 박영호 씨가 말했습니다. "50년 만인데 어색할까 봐 걱정했어."
"근데 와보니까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
"응. 우리 18살로 돌아간 것 같았어."
"이제 우리 진짜 친구 같아. 뭐든지 얘기할 수 있어."
최수진 씨가 말했습니다.
"나 이 모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퇴직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외로웠거든. 근데 너희들 만나면서 외롭지 않아졌어."
"나도 그래.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 날이 기다려져."
"맞아. 이 날 때문에 산다."
동창회가 준 것
강민수 씨가 말합니다.
"50년 만의 동창회가 내게 세 가지를 줬어요."
첫째, 소속감
"퇴직하고 소속이 없어졌어요. 회사원도 아니고, 누구 아빠도 아니고. 그냥 강민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근데 동창회를 하면서 달라졌어요. 나는 '○○고 76학번'이에요. 15명의 친구가 있어요. 소속이 생겼어요."
둘째, 나를 아는 사람
"나이가 들면 나를 아는 사람이 줄어들어요. 회사 동료는 퇴직하면 안 봐요. 친척도 점점 멀어져요. 근데 동창은 달라요. 내 어릴 때를 알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50년을 모르고 살았지만 18살의 나를 기억해요. 그게 좋아요."
셋째, 기다림
"퇴직 후엔 기다릴 게 없었어요. 그냥 하루하루 지나가는 거예요. 근데 지금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을 기다려요. '이번 달엔 누가 오려나, 무슨 얘기 나눌까' 생각하면 설레요. 삶에 리듬이 생겼어요."
당신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동창들 생각나십니까? 50년 동안 연락 안 한 친구들?
강민수 씨처럼 시작해보세요. 카톡 단체방 하나면 됩니다.
기억나는 친구 한두 명에게 연락하세요. "우리 오랜만에 만날까?"
어색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 10분만 지나면 18살로 돌아갑니다.
'나를 기억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억합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처럼, 그들도 당신을 기억합니다.
김철수 씨가 말합니다.
"5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예요. 아니, 이제 친구보다 더 가까워요. 가족 같아요. 퇴직 후 외롭고 소속감 없을 때, 동창들이 나를 받아줬어요. '너는 여기 속해. 우리가 있잖아.'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오늘 졸업 앨범을 꺼내보세요. 그 얼굴들을 보세요. 그들도 지금 어딘가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처럼 늙었습니다. 당신처럼 외롭습니다.
카톡을 여세요. 메시지를 보내세요.
"안녕, 나야. 기억나? 우리 오랜만에 만날까?"
그 한 마디가 50년의 공백을 메울 겁니다. 강민수 씨처럼.
참고 자료
- 강민수 씨(가명, 68세)의 동창회 재회 경험 인터뷰 (2024년 10월)
- 한국노년학회, "노년기 사회적 관계와 소속감 연구" (2024)
- 서울대 사회학과, "동창회 참여와 심리적 안녕감"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