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거 누르면 돼요"
최동진 씨(72세)와 손주 민준이(9세)가 소파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고, 민준이는 할아버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카톡이 뭐예요?"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카카오톡이요! 문자 같은 건데 사진도 보낼 수 있어요. 여기 이 노란 거 누르면 돼요."
민준이의 작은 손가락이 화면을 콕 찍었습니다. 카카오톡이 열렸습니다.
2024년 1월. 최동진 씨는 스마트폰을 샀습니다. 70년간 전화기만 쓰다가 처음입니다. 아들이 사준 겁니다. "아버지, 이제 다들 스마트폰 써요."
하지만 난감했습니다. 버튼이 없습니다. 화면만 있습니다.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자는 작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들한테 물어봤어요. 근데 아들은 바빠요. 빨리빨리 설명하는데 이해가 안 돼요. 몇 번 물어보니까 짜증내더라고요."
그때 민준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내가 알려줄게요."
첫 수업: 카카오톡
민준이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먼저 이 노란 거 눌러요. 카카오톡이에요."
할아버지가 눌렀습니다. 화면이 바뀌었습니다. 여러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게 뭐예요?"
"친구 목록이요. 여기 할머니 있죠? 누르면 할머니한테 메시지 보낼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이름을 눌렀습니다. 채팅창이 열렸습니다.
"여기에 글 쓰면 돼요. 할아버지, 해보세요."
할아버지는 한 글자씩 눌렀습니다. "밥 먹었어?" 다섯 글자 쓰는 데 2분 걸렸습니다.
"이제 이 비행기 모양 누르면 보내지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눌렀습니다. 메시지가 전송됐습니다. 30초 후 할머니한테 답장이 왔습니다. "응, 먹었어요."
"오! 됐다!"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민준이도 웃었습니다. "할아버지, 잘하셨어요!"
"그날 뭔가 뿌듯했어요. 손주가 칭찬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두 번째 수업: 사진 보내기
다음 날, 민준이가 또 왔습니다. "할아버지, 오늘은 사진 보내는 거 알려줄게요."
민준이는 할아버지 스마트폰으로 자기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 이제 이 사진을 할머니한테 보낼 거예요."
카카오톡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채팅창을 열었습니다.
"여기 이 더하기 버튼 보이죠? 여기 누르면 사진 보낼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눌렀습니다. 여러 아이콘이 나왔습니다.
"이 사진 모양 누르면 돼요."
사진첩이 열렸습니다. 방금 찍은 민준이 사진이 보였습니다.
"이거 누르고, 여기 선택 누르면 끝이에요."
할아버지가 차근차근 따라 했습니다. 사진이 전송됐습니다.
1분 후 할머니한테 답장이 왔습니다. "민준이 귀엽네. 잘 배우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답장을 쳤습니다. "응. 민준이가 선생님이야."
이번엔 1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어제보다 빨라졌습니다.
세 번째 수업: 유튜브
일주일 후. 민준이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유튜브 아세요?"
"그게 뭔데?"
"동영상 보는 거예요. 재밌는 거 많아요.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만한 것도 있어요."
민준이는 유튜브를 열었습니다. 빨간색 아이콘. 검색창에 "트로트"를 입력했습니다.
"할아버지, 트로트 좋아하시잖아요. 여기 다 있어요."
화면에 수십 개의 트로트 영상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눈이 커졌습니다.
"이게 다 공짜예요?"
"네! 그냥 누르면 볼 수 있어요. 해보세요."
할아버지가 한 영상을 눌렀습니다. 트로트가 흘러나왔습니다. 화질도 좋습니다. 소리도 좋습니다.
"민준이가 알려준 그날부터 매일 유튜브를 봐요. 옛날 노래도 있고, 요즘 노래도 있고. TV보다 좋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거든요."
네 번째 수업: 사진 찍기
민준이는 이제 정기적으로 왔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토요일.
"할아버지, 오늘은 사진 찍는 거 알려줄게요."
"사진? 카메라 없는데?"
"스마트폰이 카메라예요! 여기 이 버튼 보이죠?"
민준이가 카메라 앱을 열었습니다. 화면에 거실이 보였습니다.
"이 동그란 버튼 누르면 사진 찍히는 거예요. 해보세요."
할아버지가 민준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찰칵.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제 여기 네모 버튼 누르면 찍은 사진 볼 수 있어요."
방금 찍은 민준이 사진이 나왔습니다. 선명합니다.
"와, 잘 나왔네. 디지털카메라보다 좋은데?"
"할아버지 스마트폰 좋은 거예요. 아빠가 비싼 거 사드렸대요."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정원 꽃, 산책길 풍경, 할머니 모습. 하루에 10장씩 찍습니다.
다섯 번째 수업: 인터넷 검색
한 달 후. 할아버지는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카톡도 하고, 사진도 찍고, 유튜브도 봅니다.
어느 날 민준이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궁금한 거 있으면 어떻게 해요?"
"물어봐야지. 너한테 물어보거나."
"인터넷으로 찾을 수도 있어요. 네이버 알아요?"
"이름만 들어봤어."
민준이는 네이버를 열었습니다. 검색창에 "날씨"를 입력했습니다.
"자, 오늘 날씨 나왔죠? 이렇게 궁금한 거 치면 다 나와요."
할아버지가 신기해했습니다. "뭐든지 다 나와?"
"네! 해보세요. 궁금한 거 있어요?"
할아버지가 생각했습니다. "토마토 키우는 법?"
민준이가 검색했습니다. 수십 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진도 있고 동영상도 있습니다.
"와, 이렇게 자세히 나오네. 책보다 좋은데?"
"그쵸? 이제 할아버지도 혼자 찾을 수 있어요."
3개월 후, 달라진 할아버지
2024년 4월. 최동진 씨는 이제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튜브로 뉴스를 봅니다. 산책 나가서 풍경 사진을 찍습니다. 친구들한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합니다.

"민준이한테 고마워요. 아들이 알려줬으면 짜증났을 텐데, 민준이는 참을성 있게 알려줬어요."
민준이도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할아버지 집에 오면 지루해했습니다. 이제는 신납니다.
"할아버지 가르치는 게 재밌어요. 할아버지가 잘하면 뿌듯해요. 선생님이 된 기분이에요."
할머니도 행복합니다. "영감이 스마트폰 배우면서 달라졌어요. 전에는 TV만 봤는데 이제는 사진도 찍고 영상도 보고. 민준이랑도 더 가까워졌고요."
할아버지가 배운 것, 손주가 얻은 것
최동진 씨가 말합니다.
"제가 배운 건 스마트폰만이 아니에요. 나이 들어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리고 손주와의 특별한 시간을 가졌어요."
예전에는 손주가 오면 뭘 해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용돈 주고 머리 쓰다듬는 게 전부였습니다. 대화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손주와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을 봅니다. 손주가 뭘 가르쳐주면 할아버지가 따라 합니다. 손주가 칭찬하면 할아버지가 뿌듯해합니다.
"역할이 바뀐 거죠. 제가 항상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배우는 사람이 됐어요. 그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좋았어요."
민준이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한테 가르쳐주면서 느꼈어요. '아, 선생님이 이런 기분이구나. 누군가 가르치는 게 이렇게 기분 좋구나.' 학교에서 친구들한테도 잘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스마트폰 배우기가 어렵습니까? 손주한테 부탁해보세요.
아들딸은 바쁩니다. 빨리빨리 설명합니다. 짜증냅니다. 하지만 손주는 다릅니다. 천천히 알려줍니다. 기다려줍니다. 잘하면 칭찬해줍니다.
그리고 손주도 배웁니다. 가르치는 법을. 기다리는 법을. 존중하는 법을.
최동진 씨가 말합니다.
"처음엔 창피했어요. '내가 이 나이에 손주한테 배워야 하나' 싶었죠. 근데 해보니까 전혀 창피한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특별했어요. 민준이랑 이렇게 가까워질 줄 몰랐어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할아버지와 손주는 나란히 앉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손주는 가르치고, 할아버지는 배웁니다.
그리고 둘 다 행복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주가 너무 어려서 잘 못 가르치는데 어떻게 하나요?
A.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어리면 자녀(손주의 부모)에게 부탁하거나, 동네 복지관 스마트폰 교실을 이용하세요. 요즘 많은 복지관에서 무료로 시니어 스마트폰 교육을 합니다. 또는 통신사 대리점에서도 기본 사용법을 알려줍니다.
Q. 손주가 너무 빨리 설명해서 따라가기 힘든데요?
A. "천천히 말해줄래? 할아버지/할머니가 잘 못 따라가겠어"라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씩 배우세요. 오늘은 카톡만, 다음엔 사진만. 욕심내서 한꺼번에 배우려 하면 헷갈립니다. 배운 걸 메모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손주가 가르쳐준 걸 공책에 적어두세요.
참고 자료
이 글은 2024년 10월 필자가 직접 인터뷰한 최동진 씨(가명, 72세)와 손주 민준이(가명, 9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 학습 과정은 실제 3개월간의 과정을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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