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맨날 그래?"
명절 저녁, 아들이 던진 한마디에 박순자 씨(67세)는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분명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말이었는데. 살 좀 빠진 것 같아서 밥은 제때 먹냐고 물었을 뿐인데. 며칠 뒤 아들에게서 온 문자는 더 충격이었습니다.
"엄마, 나 이제 서른다섯이야. 제발 좀 내버려 둬."
그날 밤 박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체 뭘 잘못한 걸까. 30년 넘게 키운 자식인데, 이제는 전화 한 통 하기도 눈치가 보입니다.

왜 대화가 안 될까요?
사실 박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7명이 "자녀와 대화가 어렵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되기 때문에 자꾸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이 자녀에게는 "잔소리"로 들리는 겁니다.
30년 전에는 통했던 방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였던 자녀는 이제 자기 생각과 삶의 방식이 있는 성인이 됐으니까요. 관계의 규칙이 바뀌었는데, 우리만 예전 규칙으로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말하는 방식만 바꿔도 관계가 달라집니다. 지금부터 5단계로 나눠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1단계: "왜"를 "어떻게"로 바꿔보세요
자녀가 방어적으로 변하는 대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왜"로 시작하는 질문입니다.
"왜"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추궁으로 느껴집니다. 뭔가 잘못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요. 같은 궁금증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왜 아직도 결혼 안 해?"라고 물으면 자녀는 움츠러듭니다. 대신 "요즘 좋은 사람 만나고 있어?"라고 물으면 대화가 열립니다. "왜 그 회사 안 그만둬?"는 "회사 생활은 요즘 어때?"로 바꿀 수 있고요. "왜 전화를 안 받아?"는 "바빴구나, 언제 시간 괜찮아?"로 바꾸면 됩니다.
"어떻게"로 시작하면 자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공간이 생깁니다. 판단받는 느낌 대신 관심받는 느낌을 받게 되죠.

2단계: 조언 대신 경험을 나눠보세요
"너 그러면 안 돼"보다 "나도 그랬었어"가 훨씬 부드럽게 전달됩니다.
김영호 씨(71세)는 사업 실패 후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40대 초반에 사업 접고 6개월 동안 집에만 있었어. 그때 할아버지가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기다려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조언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경험 나눔은 옆에 나란히 앉는 느낌을 줍니다. "나도 그랬어, 그래서 네 마음을 알아"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니까요.
자녀가 이직을 고민하면 "그 나이에 이직이 말이 되냐"보다 "나도 40대에 이직할까 고민 많이 했었어. 그때 뭐가 제일 걱정됐냐면..."이라고 시작해보세요. 자녀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3단계: 말하기 전에 3초만 멈춰보세요
걱정이 되면 입이 먼저 열립니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지금 필요한 말인지, 3초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말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세요. 첫째, 이 말을 하면 자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둘째, 이 말을 지금 당장 해야 할까, 아니면 나중에 해도 될까? 셋째,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아니오"라면, 일단 멈추는 게 좋습니다. 오늘 안 해도 되는 말은 내일 해도 됩니다. 아니, 안 해도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정숙 씨(65세)는 이 방법으로 한 달 동안 "참은 말"을 수첩에 적어봤습니다. 한 달 뒤 다시 읽어보니, 그중 80%는 안 해도 아무 문제없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참길 잘했다 싶은 말이 대부분이더라고요."
4단계: "듣기"의 비율을 높여보세요
대화에서 부모가 말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70%? 80%? 혹시 90%는 아닐까요?
이상적인 비율은 30:70입니다. 부모가 30, 자녀가 70. 어렵게 느껴지시죠? 처음에는 50:50부터 시작해보세요. 내가 한 마디 하면, 자녀 말을 두 마디 듣는 겁니다.
듣는다는 건 단순히 입을 다무는 게 아닙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때 기분이 어땠어?"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거예요. 자녀는 부모가 진짜로 자기 말에 관심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자녀가 힘든 이야기를 꺼낼 때가 중요합니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일단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면, 자녀는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5단계: 작은 것부터 인정해주세요
성인 자녀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나이가 서른이든 마흔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알아서 잘하고 있네" "요즘 건강 관리 잘하는 것 같아" "바쁜데도 연락해줘서 고마워"
거창한 칭찬이 아니어도 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인정해주면 자녀는 "부모님이 나를 어른으로 대해주는구나"라고 느낍니다. 그 느낌이 쌓이면 자녀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반대로 피해야 할 말도 있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아직 멀었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말은 자녀를 여전히 아이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30년을 키웠으니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언보다 인정이 먼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원칙은 알겠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할지 막막하실 수 있습니다. 흔히 겪는 세 가지 상황별 대처법을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 명절에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 친척들이 "아직 결혼 안 했어?"라고 물으면 자녀 대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그래요,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바빠서"라고 받아주세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녀도 이미 충분히 신경 쓰이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 자녀가 결정을 잘못한 것 같을 때. "그럼 그렇지" "내가 뭐랬어"라는 말은 금물입니다. 이미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이런 말은 상처만 됩니다. 대신 "다음에는 더 잘될 거야" "이번에 배운 게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세 번째, 자녀가 연락을 잘 안 할 때. "왜 연락 안 해?"라고 따지면 더 연락이 뜸해집니다. 대신 "엄마가 먼저 연락했어. 바쁘면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줘"라고 가볍게 말해보세요. 부담을 낮추면 오히려 연락이 늘어납니다.
박순자 씨의 변화
글 처음에 등장했던 박순자 씨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그 뒤로 박 씨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전화할 때 하고 싶은 말의 절반만 하기. "왜"로 시작하는 질문 안 하기. 조언하고 싶을 때 "나도 그랬어"로 바꿔 말하기.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박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개월쯤 지났을 때, 아들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요즘 뭐 해? 나 이번 주 토요일에 갈까?"
박 씨는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달라진 건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말하는 방식을 바꾼 자신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관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수십 년 쌓인 습관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말 한마디는 오늘 당장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통화에서 딱 한 가지만 시도해보세요. "왜"를 "어떻게"로 바꾸거나, 조언 대신 "그랬구나"로 반응하거나, 하고 싶은 말의 절반만 하거나.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작은 변화가 쌓이면 대화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잔소리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자녀도 압니다. 다만 그 사랑을, 자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하면 어떨까요. 30년 넘게 쌓아온 사랑입니다. 전달 방식만 바꾸면, 그 마음은 반드시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