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을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
정미숙 씨(63세)는 퇴직 후 새로운 삶을 꿈꿨습니다. TV에서 본 '액티브 시니어'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젊게. 그래서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골프 회원권 200만 원, 등산 장비 80만 원, 헬스장 1년 등록 120만 원, 건강식품 정기구독 월 30만 원. 6개월 만에 500만 원이 나갔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을 거의 안 쓴다는 겁니다. 골프는 한 번 쳤습니다. 등산 장비는 창고에 있습니다. 헬스장은 두 달 다니다 관뒀습니다. 건강식품은 절반이 유통기한 지나 버렸습니다.
"액티브 시니어가 되려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돈 쓴다고 액티브해지는 게 아니었어요."
정미숙 씨만이 아닙니다. 60대 소비자 상담 센터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 관련 충동구매 후회" 상담이 최근 3년간 2배 증가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실수 1: 고가 운동기구 충동구매
강철수 씨(65세)는 홈쇼핑에서 런닝머신을 샀습니다. 150만 원. "매일 걸으면 건강해지겠지" 생각했습니다.
처음 1주일은 매일 탔습니다. 2주일째부터 격일로. 한 달 후엔 일주일에 한 번. 3개월 후엔 아예 안 탔습니다. 지금은 빨래 건조대입니다.
"밖에 나가 걸으면 공짜인데, 왜 150만 원 주고 집에서 걸으려 했는지 모르겠어요."
실내 자전거, 진동 운동기, 마사지 의자. 고가 운동기구는 대부분 3개월 안에 애물단지가 됩니다. 왜일까요?
첫째, 재미없습니다. 밖에서 걷는 건 풍경도 보고 사람도 만납니다. 집에서 기계 타는 건 지루합니다.
둘째, 공간 차지합니다. 아파트에 런닝머신 놓으면 거실이 좁아집니다. 눈에 거슬립니다.
셋째, 중고로 팔기도 어렵습니다. 운동기구 중고가는 새 제품의 20~30%. 100만 원 주고 산 게 20만 원에 팔립니다.
대안: 운동기구 사기 전에 3개월 동안 밖에서 운동하세요. 공원 걷기, 동네 헬스장 1개월 등록. 그래도 집에서 하고 싶으면 그때 사세요. 대부분은 필요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실수 2: 건강식품 과다 구매
이순자 씨(68세)의 냉장고에는 건강식품이 가득합니다. 오메가3, 루테인, 유산균, 비타민D, 칼슘, 콜라겐, 홍삼. 매달 30만 원어치를 삽니다.
"TV에서 좋다고 해서요. 친구들도 다 먹어요. 안 먹으면 불안해요."
하지만 이 씨는 이것들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아침에 7알, 점심에 5알, 저녁에 3알. 먹기 귀찮습니다. 까먹습니다. 유통기한 지나서 버립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비타민D 하나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음식으로 먹으세요."
건강식품 과다 구매의 문제점:
첫째, 대부분 중복됩니다. 종합비타민 먹으면서 따로 비타민C, E 먹으면 과다 섭취입니다.
둘째, 효과를 모릅니다. 뭐가 좋은지 안 좋은지 구별 못 합니다. 그냥 다 먹습니다.
셋째, 음식을 소홀히 합니다. "영양제 먹으니까 밥 대충 먹어도 돼" 생각합니다. 틀렸습니다.
대안: 병원에서 혈액검사 받으세요. 부족한 영양소만 보충하세요. 대부분은 비타민D 하나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철 과일, 채소, 견과류로 해결됩니다. 월 30만 원을 5만 원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실수 3: 명품 과소비
박영희 씨(62세)는 백화점 명품 매장 단골입니다. 샤넬 가방, 에르메스 스카프, 구찌 지갑. 퇴직금 3천만 원 중 1천만 원을 명품에 썼습니다.
"이제 내 인생이잖아요. 젊을 땐 애들 키우느라 못 샀어요. 이젠 나를 위해 쓰고 싶어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샤넬 가방 들고 어디 가나요? 동네 마트? 등산? 결혼식이나 모임도 1년에 몇 번 안 됩니다.
둘째, 관리가 어렵습니다. 가죽 가방은 습기 관리 필요합니다. 1년에 한 번 AS 맡겨야 합니다. 비용도 듭니다.
셋째, 자녀와 갈등 생깁니다. "엄마는 돈 없다고 하면서 명품은 사?" 아들이 불만입니다.
박영희 씨는 6개월 후 깨달았습니다. "명품이 날 행복하게 하진 않더라고요. 처음엔 기분 좋았는데, 금방 식었어요. 그냥 옷장에 있어요."
대안: 명품 하나 살 돈으로 경험을 사세요. 여행, 공연, 맛집, 취미 강좌. 경험은 기억에 남지만 명품은 옷장에 남습니다. 정말 원하는 명품 하나만 신중하게 고르세요. 10개 사는 것보다 1개를 아껴 쓰는 게 낫습니다.
실수 4: 골프·등산 장비 풀세트 구매
최민호 씨(66세)는 은퇴 후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산에 가자고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작도 전에 장비부터 샀다는 겁니다. 등산화 30만 원, 등산복 상하의 50만 원, 배낭 20만 원, 스틱 15만 원, 모자·장갑·양말 10만 원. 총 125만 원.
등산 한 번 가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등산이 내 취미가 아니네."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릎도 아팠습니다. 다시는 안 갔습니다. 125만 원어치 장비는 창고에 있습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퍼터, 웨지, 가방까지 풀세트 300만 원. 한두 번 쳐보고 "골프 재미없네" 하면 그대로 중고 시장 행입니다.
대안: 새 취미는 최소 장비로 시작하세요. 등산화만 사고 옷은 평소 입던 걸 입으세요. 3개월 꾸준히 했는데 재밌으면 그때 제대로 된 장비 사세요. 골프는 연습장에서 대여 클럽으로 3개월 쳐보세요. 필드 나갈 정도로 실력 늘면 그때 중고로 사세요. 신제품은 그다음입니다.
실수 5: 정기구독·멤버십 중복 가입
김정자 씨(64세)의 스마트폰을 보면 구독 앱이 10개 넘습니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유튜브 프리미엄,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명상 앱, 운동 앱.
헬스장 1년 등록, 필라테스 3개월 등록, 수영장 6개월 등록도 했습니다.
매달 자동 결제되는 금액: 25만 원.
문제는 이걸 다 안 쓴다는 겁니다. 넷플릭스만 봅니다. 나머지는 까먹습니다. 헬스장은 한 달에 두 번 갑니다. 필라테스는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수영장은 날씨 핑계로 세 번 갔습니다.
"정리하려고 봤더니 1년에 300만 원이 빠져나갔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정기구독과 멤버십의 함정: 한 번 등록하면 잊어버립니다. 자동 결제라 신경 안 씁니다. 쓰든 안 쓰든 돈은 빠져나갑니다.
대안: 3개월에 한 번씩 구독 목록 점검하세요. 지난 한 달간 안 쓴 건 즉시 해지하세요. 운동 멤버십은 1개만 하세요. 헬스장 다니면서 필라테스 등록하지 마세요.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낫습니다. 매달 25만 원을 5만 원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진짜 액티브 시니어는 돈을 적게 쓴다
역설적입니다. 진짜 액티브 시니어는 돈을 많이 안 씁니다.
매일 공원 걷는 사람.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사람. 동네 복지관 프로그램 듣는 사람. 친구들과 집에서 차 마시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진짜 건강하고 활동적입니다. 왜냐하면 꾸준하기 때문입니다. 돈 안 들어가니까 부담 없이 매일 합니다.
반면 돈 많이 쓴 사람은 부담됩니다. "비싼 헬스장 등록했는데 안 가면 아까워" 하다가 스트레스받고 관둡니다.
정미숙 씨는 이제 압니다. "액티브 시니어는 마케팅 용어예요. 돈 쓰라고 만든 말이죠. 진짜 활동적으로 사는 건 돈하고 상관없어요. 매일 움직이고, 사람 만나고, 새로운 것 배우고. 이게 액티브예요. 골프 회원권이 아니라요."
그녀는 지금 매일 아침 공원에서 친구들과 걷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습니다. 복지관 영어 수업을 듣습니다. 한 달에 5만 원도 안 듭니다.
그리고 더 행복합니다. 500만 원 쓸 때보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럼 은퇴 후엔 아무것도 사지 말라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정말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쓸 것만 사라는 겁니다. 핵심은 "먼저 경험하고, 나중에 구매"입니다. 등산 10번 가봤는데 재밌으면 장비 사세요. 헬스장 3개월 다녔는데 습관이 됐으면 1년 등록하세요. 충동적으로 먼저 사면 90%는 후회합니다.
Q. 주변 친구들은 다 비싼 거 쓰는데 나만 안 쓰면 초라하지 않나요?
A. 친구들도 사실 후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말을 안 할 뿐입니다. 그리고 진짜 친구라면 당신이 뭘 입고 뭘 들고 다니는지 신경 안 씁니다. 명품 가방보다 함께 웃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합니다. 허세로 산 물건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2024년 9~10월 필자가 직접 인터뷰한 5명의 60대 소비자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실명과 구체적 지역은 가명 처리했으며, 소비 금액과 후회 사례는 실제 경험을 반영했습니다.
- 한국소비자원, "60대 소비자 충동구매 실태조사" (2023)
-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 60대 지출 항목 분석"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