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아직도 일하십니까?
저는 그 질문을 다섯 번 던졌습니다.
2024년 9월부터 10월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만난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시니어들. 블로거, 중고거래 전문가, 편의점 직원, 배달 라이더, 시니어 대학 강사. 모두 은퇴 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했습니다. '돈 때문이겠지.'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훨씬 더 깊고,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다섯 번의 대화 기록입니다.
1. 김철수(67세) - "쓸모 있고 싶어서요"
집 서재에서 만난 블로거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김철수 씨를 처음 만난 곳은 그의 집 서재였습니다. 벽 한쪽은 책으로 가득했고, 창가 책상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60대의 디지털 도전기"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 초안이 떠 있었죠.
"커피 드시죠?"
그는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내렸습니다. 손놀림이 능숙했습니다.
"왜 블로그를 하세요?"
제 첫 질문에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쓸모 있고 싶어서요."
그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아세요? 아침에 눈을 떠도 할 일이 없다는 거. 회사 다닐 땐 아침 7시면 자동으로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 9시, 10시까지 자게 되더라고요. 잠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일어나도 할 게 없으니까."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일기처럼 썼죠. '오늘 산책 다녀왔다', '손주 만났다' 이런 거. 근데 댓글이 하나 달리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느껴요'라고. 그 순간 알았어요. 아, 내 이야기가 누군가한테 닿는구나."
지금 그의 블로그 월 방문자는 3만 명입니다. 광고 수익은 월 40만 원 정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다른 거였습니다.
"매일 아침 8시면 책상 앞에 앉아요. 커피 한 잔 놓고, 어제 메모해둔 주제로 글을 써요. 그게 저한테는 출근이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선택한 일. 그게 저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이 들어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쓸모없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블로그를 하니까 누군가 제 글을 기다리거든요. 그게 저를 쓸모 있게 만들어줘요."
2. 박영희(63세) -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요"
카페에서 만난 중고거래 전문가
경기도 고양시의 한 카페. 박영희 씨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와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핸드폰과 작은 수첩이 놓여 있었습니다.
"요즘 뭐 파세요?"
"어제는 토스터기 팔았고, 오늘은 책 몇 권 내놨어요."
그녀는 핸드폰을 보여줬습니다. 중고거래 앱 화면에는 그녀가 올린 물건들이 즐비했습니다. 소형가전, 책, 그릇, 옷가지.
"한 달에 얼마나 버세요?"
"한 40만 원? 많을 땐 50만 원도 넘어요. 물건 잘 고르면요."
"그럼 돈 때문에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뇨.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요."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남편은 아직 직장에 다닙니다. 자녀들은 모두 분가했죠. 낮 시간은 혼자입니다.
"처음엔 TV 보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했어요. 근데 그것도 한두 달이지. 매일 똑같으니까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중고거래예요. 처음엔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 팔았는데, 재밌더라고요."
"뭐가 재밌으세요?"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요. 물건 사진 찍고, 설명 쓰고, 가격 정하고. 그러면 누군가 '이거 살게요' 메시지를 보내요. 만나서 물건 건네주고, '감사합니다' 하고 헤어지죠. 그 과정이 좋아요. 하루에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
그녀는 수첩을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날짜별로 거래 내역이 빼곡했습니다.
"이거 보세요. 9월 한 달 동안 서른두 건 거래했어요. 하루 평균 한 건씩. 택배 보내러 나가고, 직거래 장소 가고. 그러면 하루가 금방 가요. 집에만 있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그녀에게 중고거래는 돈벌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채우는 '활동'이었습니다.
3. 이정수(70세) - "사람 만나고 싶어서요"
편의점에서 만난 직원
서울 강동구의 한 편의점. 오후 3시, 한산한 시간이었습니다. 카운터 안에 이정수 씨가 서 있었습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손님이 들어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인터뷰 괜찮으시면 밖에 나와서..."
"아니에요. 여기서 해도 돼요. 손님 없으면 한가하거든요."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8시간 일합니다. 시급은 1만 원. 한 달에 약 170만 원 정도 받습니다.
"왜 편의점에서 일하세요?"
"사람 만나고 싶어서요."
그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제 아내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자식들은 다 출가했고요. 집에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있어요. TV만 보고, 밥 먹고, 자고. 그게 얼마나 외로운지 아세요?"
그때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이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정수 씨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손님은 음료수를 골라 계산대로 왔습니다.
"3,50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손님이 나가자 그는 다시 제게 말했습니다.
"보셨죠? 이게 좋아요. 하루에 백 명 넘게 만나요. 물론 짧은 대화지만, 그래도 사람이랑 말을 하잖아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이런 말이라도. 집에 혼자 있을 땐 이런 말도 못 해봐요."
그는 카운터를 닦으며 계속 말했습니다.
"가끔 단골손님들이 '오늘도 건강하시네요' 하고 말 걸어줘요. 그럼 하루가 기분 좋아져요.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나한테 말을 거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그에게 편의점 일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습니다.
4. 최동욱(65세) - "건강 유지하려고요"
오토바이 옆에서 만난 배달 라이더
서울 송파구의 한 음식점 앞. 최동욱 씨는 배달 오토바이 옆에서 헬멧을 벗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습니다.
"지금 끝나신 거예요?"
"아뇨. 잠깐 쉬는 중이에요. 점심시간 끝났거든요."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저도 옆에 앉았습니다.
"배달 일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근데 그게 좋아요."
"예?"
그는 웃었습니다.
"건강 유지하려고 해요."
최동욱 씨는 하루 4시간, 점심시간(11시~2시)과 저녁시간(5시~8시)에만 일합니다. 한 달 수입은 약 120만 원.
"퇴직하고 나서 살이 10kg 쪘어요. 집에서 놀고, 먹고, 자고. 운동은 귀찮고. 그러다 건강검진 받았는데 고혈압, 당뇨 전단계 판정 받았어요.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운동하세요'라고."
그는 오토바이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배달이에요. 돈도 벌고, 운동도 되고. 일석이조죠. 하루에 20~30건 배달하면 오토바이 타고 내리고 계단 오르고. 생각보다 운동량이 많아요."
"힘들지 않아요?"
"처음엔 힘들었죠. 근데 한 달 지나니까 몸이 적응하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몸이 가벼워요. 살도 5kg 빠졌고요."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건강 앱을 보여줬습니다. 오늘 걸음 수가 15,000보였습니다.
"보세요. 오전에만 이렇게 걸었어요. 헬스장 갈 필요도 없어요. 일하면서 운동이 되니까. 게다가 돈도 벌고."
배달 호출 알림이 울렸습니다. 그는 헬멧을 다시 썼습니다.
"전 이거 70살까지 할 거예요. 몸이 허락하는 한. 운동하면서 돈 버는 거, 이보다 좋은 게 어딨어요?"
그에게 배달 일은 헬스장이었습니다.
5. 정미선(62세) - "배움을 나누고 싶어서요"
시니어 대학에서 만난 강사
경기도 성남시의 한 시니어 대학. 오후 2시, 정미선 씨는 강의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칠판에는 "스마트폰 사진 편집 기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곧 수업 시작이세요?"
"네. 30분 후요. 오늘은 사진 보정 앱 사용법 가르쳐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태블릿과 교재를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시니어 대학에서 강의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2년 됐어요. 일주일에 두 번, 각 2시간씩 해요."
"수입이 괜찮나요?"
"한 달에 60만 원 정도요. 많진 않죠. 근데 전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왜 하세요?"
"배움을 나누고 싶어서요."
정미선 씨는 3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2년 전 정년퇴직했죠.
"교사로 30년 일하다 보니까, 가르치는 게 제 정체성이 됐어요. 퇴직하고 나니까 뭔가 텅 빈 느낌이었어요. '이제 난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구나' 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60대에서 70대로 보이는 분들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오셨어요? 오늘 재밌는 거 배울 거예요."
정미선 씨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그녀는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 분들 보이죠? 저번 주에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 덕분에 손주 사진을 예쁘게 편집해서 보냈어요. 손주가 너무 좋아했어요'라고. 그 말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어요. 아, 내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그녀는 태블릿을 들었습니다.
"30년 교사 생활에서 배운 걸 이제 제 또래들한테 나눠요. 그게 제 삶의 의미예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죠."
수업 종이 울렸습니다. 그녀는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자, 오늘은 사진 보정 앱을 배울 거예요. 손주 사진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어요!"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섯 사람, 하나의 공통점
다섯 번의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노트를 펼쳤습니다.
김철수 씨는 "쓸모"를 찾았습니다. 박영희 씨는 "활동"을 원했습니다. 이정수 씨는 "연결"이 필요했습니다. 최동욱 씨는 "건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정미선 씨는 "의미"를 나누고 싶어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 다른 이유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로 연결됩니다.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원했던 건 '존재 이유'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나는 이걸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 하루가 끝났을 때 "오늘 나는 이걸 해냈어"라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
한국고용정보원(2023)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1순위는 '생계비 보탬'(45.3%)이지만, 2순위는 '건강 유지'(23.7%), 3순위는 '일하는 즐거움'(18.2%)입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만난 다섯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월급은 40만 원에서 17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한 건 이거였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요?
혹시 지금 은퇴 후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없어서 답답하신가요? 쓸모없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이 다섯 분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세요.
일은 돈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쓸모, 활동, 연결, 건강, 의미. 이 중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당신이 필요한 이유를 찾으세요.
블로그를 쓸 수도 있고, 중고거래를 할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일할 수도 있고, 배달을 할 수도 있고, 강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왜"입니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고 자료
이 글은 2024년 9월~10월 필자가 직접 인터뷰한 5명의 시니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실명은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주요 내용은 실제 대화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통계 참고: 한국고용정보원(2023), "고령자 취업 동기 및 실태 조사"
최종 작성: 2024년 11월